2007년 4월 9일에 반전평화 실현을 위한 대학생 토론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김덕엽
1.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지 4년이 지났다. 지난 4년 동안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의 동맹 세력들은 실패를 거듭했다.
최근에는 레바논인의 80퍼센트의 지지를 받던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헤즈볼라가 승리한 것이다. 이란 정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의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저항세력-이라크 저항세력-레바논 헤즈볼라를 연결하는 ‘반미 블록’의 핵심 고리인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전쟁 예행연습이었다. 이스라엘의 패배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라크 점령과 더불어 미국의 이란 공격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미국 중간 선거에서 부시와 공화당이 패배한 것이다. 중간 선거의 핵심은 이라크였고 다수의 미국인들은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하기를 바라며 부시와 공화당을 심판했다. 9.11 직후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고 이라크를 침략하기 시작했을 때 80퍼센트의 지지를 받던 부시는 이제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의 대통령이 됐다.
이는 두 가지 때문에 벌어졌다. 첫째는 저항 세력 때문이고, 둘째는 반전 운동 때문이다.
부시와 블레어가 이라크 정복을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국은 천하무적처럼 보였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순식간에(2001년 9.11 이후 겨우 두 달 만에) 전복했을 때, 미국의 세계 지배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03년 4월 9일 바그다드 함락 이후 지금은 함께 행진하지만 당시 반전 운동을 이탈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할 정도로 미국이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지리라는 생각은 광범하게 퍼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어느 누구도 부시가 이라크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부시 스스로도 이라크 정책이 잘못돼 가고 있다고 시인할 정도다. 미군은 최첨단 기술을 이행한 속전속결식 전쟁으로 몇 주만에 이라크 군대를 이겼지만, 점령에 반대하는 대다수 이라크인들의 저항에 직면해서는 대체로 무능력했다.
과거의 식민 점령군들이 그랬듯이, 미군은 반란 진압의 근본 법칙 앞에 무너졌다. 그 법칙이란, 게릴라들을 분쇄할 수 있는 방법은 저항 세력들을 고립시키는 것뿐이다. 그러나 점령 세력은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초기 무장 저항세력의 주요 기반은 주로 이라크 중부의 수니파 무슬림 거주 지역이었으나 점령이 시작된 지 채 몇 달이 안 돼 남부의 시아파 무슬림들로 저항 세력이 확대됐다. 이 때문에 미국은 동맹국인 영국의 식민지 지배 전례를 따라 이간질시켜 저항세력들을 각개격파할 계획을 추진중이다.
2006년 2월 사마라의 시아파 성지인 황금돔 사원 폭파 사건 이후 종파간 살상의 악순환이 걷잡을 수 없이 격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종파간 살상이 유혈 낭자하다던 지난해 말까지 이라크 폭력 사태의 60퍼센트 이상은 점령군과 점령군에 부역해 온 이라크나 쿠르드족을 겨냥한 공격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라크 내 시아파 저항 세력의 구심인 알 사드르는 최근 다시 저항 세력에게 미군을 공격할 것을 촉구했다.
전 세계적 규모에서 반전 운동은 2003년 2월 15일 반전 운동을 일컬어 <뉴욕 타임스>가 말한 ‘슈퍼파워’ 구실을 해 왔다.
반전 운동은 이라크에 1천7백여 명을 파병하며 부시의 ‘의지의 동맹’을 자처하던 스페인 아스나르 정부를 물러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군을 철군하게 하는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반전 운동은 지난 4년 간 부시의 푸들이라 조롱당한 블레어는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할 때 중요한 군사적 거점이 돼 주길 원했던 터키는 자국 내 반전 운동 때문에 미군에 영공조차 개방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반전 운동은 의미 있는 성과를 내 왔다. 한국군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으로 반전 운동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한국에서도 반전 운동은 한미 전쟁동맹을 끊어내는 투쟁을 진전시키고 있다.
유엔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의지의 동맹’으로 이라크를 침략한 부시에게 노무현 정부는 중요한 동맹 세력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침략 초기 부시는 노무현 정부에 1만 5천여 명 이상의 전투병을 이라크에 파병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반전 운동이 파병을 막지는 못했지만 파병을 수차례 지연시켰다. 파병 규모도 3천여 명 규모로 축소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파병 한국군 주둔지로 정한 키르쿠크가 아닌 아르빌로 파병지를 변경해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파병 반대 운동은 노무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돼 집권기간 내내 노무현을 괴롭혔다. 집권하자마자 파병을 단행한 노무현은 당선 직후 지지율이 80퍼센트를 웃돌다 4월 파병 강행 직후 수직 하강했다. 2004년 4대 개혁을 하겠다며 ‘대국민 사기극’을 하면서 지지율이 반등했다가 지난해 파병을 재연장 하면서 그나마 바닥을 치던 지지율이 10퍼센트대로 추락했다.
전 세계 반전 운동이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들춰내면 들춰낼수록, 한국의 반전 운동이 노무현 정부의 파병 계획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반전 여론은 높아만 갔다. 지난해 노무현 정부가 ‘철군 사기극’을 펼치며 가까스로 파병을 재연장할 때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은 지금의 방식으로 파병하는 것에 반대했고, 70퍼센트는 즉각 철군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 한국지부’라는 조롱을 받던 한나라당도 ‘비핵반전평화’를 얘기하고 있다. 높은 반전 여론을 의식해 정동영과 손학규도 평화를 자신의 이미지로 포장하는데 여념이 없다.
2.
그러나 부시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것처럼 부시를 지지한 각국 지배자들이 정치적 식물인간이 된 정치적 패배에도 부시는 지난해 12월 미국의 최고 권력자들이 ‘이라크 스터디 그룹’ 보고서에서 제안한 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새 사령관 데이빗 페트류스는 미군 ‘증파’를 공세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지난 3월 부시는 4천7백 명을 추가로 ‘증파’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시와 신보주의자들은 그들 스스로 당분간 이라크에서 발을 빼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이라크는 ‘전략적 상품’인 석유를 지배할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지정학적 필요에 의해 선택한 전장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냉전 해체 이후 다극화한 세계 체제를 미국 중심의 패권 체제로 다시 한 번 재편하기 위해 이라크를 선택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이라크를 차지하면 중동을 지배하는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지위가 확고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중동을 지배한다는 것은 급진적 지리학자 데이빗 하비가 지적했듯이, 유럽연합, 일본, 중국 같은 잠재적 경쟁자들이 중동 석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미국은 ‘석유 수도꼭지’를 잠글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미국의 반전 운동의 일부와 전 세계 반전 운동 세력 중 일부는 민주당이 이라크 점령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3월 23일 2008년 9월 1일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민주당이 주도하는 미국 하원에서 이라크 전비법안이 통과됐다. 부시는 이 조차도 즉각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은 지난 중간선거에서 철군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상하원 모두 장악했다. 그러나 하워드 진이 비판하듯 민주당은 “철군시한을 명시하는 동시에 전쟁비용 1240억 달러를 승인하”는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한 것이다. 하워드 진은 반전 운동이 미국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민주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부시가 의회의 결정을 무시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마당에 민주당은 의회에서 할 도리를 다했다는 식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미군이 이라크에서 완전 철군하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단계적 철군을 주장하고 있고, 특히 ‘테러와의 전쟁’을 넓게 수행하기 위해 이라크에서 발목잡힐 것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으로 미군을 더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민주당을 믿어서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하워드 진의 주장은 완전히 옳다.
최근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몇몇 민주, 공화당 의원들이 시리아를 방문했다. 민주당이 부시 정부에 압력을 넣어 이란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부시 행정부는 딕 체니의 딸 엘리자베스 체니를 책임자로 하는 ‘이란, 시리아 작전그룹’(ISOG)을 설치했고 미국 육해공군과 해병대는 ‘이란해방작전’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CIA는 과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당시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지원한 것처럼 이란의 반체제운동을 지원해 내전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
지난 2.13 합의와 북핵을 둘러싼 6자회단이 재개됐고 미국이 북한이 핵을 먼저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양보도 없다던 태도를 바꾸고 협상장에 나오는 모습을 본 이들은 이란도 북한처럼 다자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노엄 촘스키는 미국이 왜 이란과 북한을 다르게 대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에게 북한 문제는 이란 문제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란 문제가 핵무기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 북한과 달리 중동의 중요성은 전 세계 에너지 공급원의 중심이라는 데 있다.”
미국의 기성 정치권 내에는 이란 확전을 둘러싸고 심각한 전술적 이견이 있다. 그러나 부시 정부의 최고위층 사이에는 이라크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이 확전뿐이라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2001년과 2002년에도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공격을 감행했다.
미국 제국주의의 잇따른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란 공격이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백악관과 네오콘에게는 이란공격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라크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이란을 탓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일부 지배자들과 미국의 중동 지배력을 확립하려면 중동 내 반미 세력들을 이끌고 있는 이란을 공격해야 한다고 늘 벼르던 자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수렴하고 있다.
부시는 수백 대의 전투기뿐 아니라 50척의 군함도 거느리게 될 항공모함 전단 두 개를 페르시아만에 배치했다. 이스라엘 폭격기들이 장거리 임무를 훈련하고 있고 이스라엘 전투기가 이란을 폭격하기 위해 이라크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라크 정부에 영공을 개방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의 군사력은 하루 24시간 내내 30~40일 동안 이란을 공습할 수 있다.
최근 이란 정부의 영국 해군 억류 사건이나 지난 1월 미군이 아르빌 주재 이란 외교연락사무소를 급습해 6명을 연행(미군은 이 중 한 명만 석방했다)한 것은 걸프만에 고조되는 미국의 전쟁 위협의 다른 표식인 것이다.
따라서 올해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은 미국의 이란 공격 계획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이런 운동을 건설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미국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를 두드려 끊어내는 것이다. 21세기 사회주의를 말하는 차베스는 2002년 미국이 사주한 베네수엘라 자본가들의 쿠데타로 권력을 잃었다가 차베스를 지지한 민중들의 지지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차베스는 그 뒤 부시의 저격수가 돼 부시가 가는 곳마다 부시의 악행을 폭로하며 반전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고무하고 있다. 차베스는 미국의 뒷마당인 남미에서 자신이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해 운동을 건설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이라크 민중들의 투쟁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은 두 전선에서 전쟁을 수행해 승리하는 ‘윈-윈 전략’을 패기한지 오래다. 베트남 전과 달리 충분한 지상군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미국은 이라크 점령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동안 시간 벌기가 필요하다.
바로 이 점에서 2.13 합의와 6자회담이 진행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BDA 문제로 6자회담이 난항을 반복하고 있다. 그 동안 북한은 미국이 진지하게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BDA를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다.
2.13 합의는 말 그대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일 뿐이다. 부시 정부의 정책 변경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부시 정부가 북미 관계 정상화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라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부시 정부는 이란을 손봐줘야 하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로 힘을 분산할 여력이 없다, ‘전쟁’할 여력이 없다면 일단 ‘대화’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북한 핵을 동결하는 동시에 그것이 주변국에 미칠 효과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목적에 비춰 봤을 때, 213 합의의 앞날은 상당 부분 중동 정세에 달려 있을 것이다. 중동에 전념해야 하는 동안에는, 미국은 여러 문제들을 일단 덮어두고 그럭저럭 관계를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중동에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다면 미국은 덮어뒀던 문제를 언제든 다시 꺼내들어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사용하려 할 수 있다.
한반도를 세계의 중심처럼 여겨 “2.13 합의문 발표로서 … 미국의 패권 정책에 제동이 걸리고 대화와 협력을 통한 세계 질서 구축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고 본다면, 현재진행형인 미국의 전쟁에 대한 반대는 자연히 뒷전이 될 것이다. 미국이 중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미국이 중동에서 확실하게 패퇴하지 않는 한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지속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되기는 어렵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가 제국주의 전쟁을 지원하는 상화에서는 진정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와 아울러 동북아 평화를 바라는 세력들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반대하는 운동과 이란 공격을 반대하는 운동과 운명공동체가 돼야 한다.
3.
우리는 2002년 두 여중생 압사 사건에 항의하며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반감을 느끼며 급진화하는 수많은 청년들을 보와 왔다. 이들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직전부터 반전 운동의 활력소가 돼 왔다. 당시 정치의식이 없다며 지탄을 받던 대학생들은 한국 정부의 파병 계획에 반대해 거리로 나섰다. 반전 운동의 역사가 짧고 무엇보다 정부가 파병을 강행했을 때 사기저하하기도 했지만, 2007년 3.17 국제공동반전행동에서 볼 수 있듯이 청년들은 다시 반전 운동 대열로 합류하고 있다.
2003년 3~4월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추진할 때 연일 국회 앞을 지키며 파병에 반대한 주된 대열도 대학생들이었다. 이미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이 침략한 것에 반대해 대학에서 반전 운동을 건설한 기구를 꾸리기도 했지만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반대해 이런 기구들은 확대될 수 있었다. 올해 3.17 국제공동반전행동에 서울 소재 수많은 대학 학생들이 참가했는데 특히, 반전 운동 기구를 꾸려 활동하는 대학에서 대규모로 참가했다. 성공회대는 전교생의 10분의 1인 2백여 명이 참가했고, 고려대학도 60명 이상이 참가했다.
한반도 평화가 국제 반전 운동과 생사를 함께 하는 오늘,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주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테러와의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을 즉각 철군시키는 투쟁이다.
지난 3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진 윤장호 하사, 2003년 11월 이라크에서 저항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한 오무전기 노동자 김난수, 곽경해 씨, 2004년 6월 목숨을 잃은 김선일 씨는 하나같이 노무현 정부의 한미 전쟁동맹에 따른 파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한국의 반전평화를 열망하는 청년 학생들은 한미 전쟁동맹의 핵심 고리인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끝장내는 투쟁을 대규모로 건설할 필요가 있다. 2003년 당시 학생운동 좌파와 종교 시민 단체 학생 단체들이 함께 청년학생반전위원회를 꾸려 활동했었다. 더 큰 규모로 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공동 투쟁 조직이 필요하다. 반전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공동 투쟁 조직은 앞으로 여러 학생 단체들의 공동 실천의 성과로 건설돼야 한다.
한국의 반전 운동은 저변을 확대해야 할 과제가 있다. 국제 반전 운동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는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참가가 두드러졌다. 한국의 반전 운동 또한 노동자, 청년, 학생으로 대열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청년 학생들의 참가는 노동자들을 행동을 고무할 가능성이 크고 실제 여러 운동에서 청년 학생들의 투쟁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무해 왔다.
반전 운동은 부시와 부시의 후임자가 누가되든, 노무현과 노무현의 후임자가 누구든 65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희생시키고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3천 명이 넘는 군인들을 희생시킨 이런 일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끔찍한 야만이 되풀이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전쟁광들을 저지하는 것이다.

